어떤 방에서

2019. 7. 10. 15:07글 쓰기/재밌는 글(소설)

 1부 : 여기가 어디?

윽! 내가 정신이 들었을 때, 나는 허리가 살짝 베인채로 어떤 어두컴컴한 방에 같혀있었다. 내가 이 곳에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한참동안 멍하니 이 방의 어둠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 이 방이 어떤 방인지 알기 위해 아픈 허리를 붙잡고 벽을 더듬으며 스위치를 찾기 시작했다.

1분, 2분, 3분... 이렇게 몇분이 흘렀을까. 나는 겨우 스위치의 위치를 알아냈다. 그러나 스위치를 몇번이고 눌러봐도 스위치는 켜지지 않았다.

'혹시 정전인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갈 때, 형광등이 깜빡이며 살짝 불이 들어왔다.

방은 체육관의 반 정도로 매우 넓었지만, 마치 황량한 사막을 연상케 할 만큼 텅텅 비어있었고, 고요했다. 그저 큰 플라스틱 통 1개와 조금 큰 냉장고와 커다란 천에 쌓여있는 침대 같은 것이 몇 대 있었을 뿐이었다. 다만 이상한 것이 있었는데, 방 바닥에 묻어있는 피 얼룩들과 방의 문이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이었다. 피 얼룩들은 내 허리에 피가 흐르던 자국이 있는 것으로 보아 내 피인 것 같았지만, 방 문이 없다는 것은 조금 이상했다.

...아픈 몸을 이끌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니 목이 말랐다. 혹시 냉장고에 물같은 것이라도 있을까 싶어 냉장고를 열어보았다.

그런데 냉장고가 열리지 않았다. 냉장고의 화면에는 '비밀번호를 입력하시오'이라는 안내 메시지와 함께 키보드가 떴다.

처음에는 장난으로 사장님_나이스_샷 같은 단어들을 입력했지만 계속 실패하자 방탄소년단_김석진 같은 정상적인 단어들을 넣어보았다.

나는 비밀번호를 풀기 위해 여러가지 단어를 넣어 보았지만 계속 '비밀번호가 일치하지 않습니다. 다시 입력해 주십시오' 라는 메시지가 뜨기 일쑤였다.

1시간 정도 지났나? 나는 아직도 비밀번호를 풀고 있었다. 이제 내가 마실 것을 찾기 위해 냉장고를 열려는 것인지 냉장고가 나를 테스트하는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10분정도가 더 지나고,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넣어보기로 하고 안되면 포기하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넣어 본 비밀번호는 다음과 같았다.

니_얼굴_조예준

컥. 내 얼굴이 조예준이라니. 상상만해도 끔찍했지만, 그런 마음을 뒤로하고 마지막 글자인 '준'으로 입력을 마무리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열렸습니다”하는 메시지와 함께 냉장고가 푸슈슝...소리를 내며 열렸다. ★마음의 상처★를 뒤로 하고 냉장고를 보니 냉장고 안에는 엄청나게 많은 양의 토마토 주스가 페트병에 포장이 되어있었다. 토마토 주스를 좋아하는 나는 허리를 다친 것도 까먹고 기쁨의 환호성과 폴짝폴짝을 했다.

그렇게 아픈 허리를 붙잡고 페트병 한 병을 집었다. 나는 단숨에 토마토 주스를 꿀꺽꿀꺽 들이켰다.

그러나 나는 이내 다시 토마토 주스를 땅바닥에 뱉고 말았다.

토마토 주스에서는 토마토 맛은 커녕 비릿한 피 맛이 났다.

'아니 왜 토마토 주스에서 피 맛이 왜 나지?'

침까지 긁어모으고 혓바닥으로도 긁어서 피를 뱉었지만 비릿한 찝찝함이 내 입안을 가득 채웠다.

혹시 다른 페트병은 토마토 주스일 것 같아 먹어봤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아 진짜 어떤 미친놈이 토마토 주스 병에다가 피를 넣어놨어!”

결국 화가 난 나는 쾅 소리가 나게 냉장고 문을 닫았다.

 

 2부 : 수상한 흔적들

한바탕 냉장고와 토마토 주스를 가장한 피 주스와 씨름을 하다보니 힘이 하나도 없었다. 자고싶고, 쉬고 싶은데 누울 곳이 없어 그냥 냉장고 옆에 있는 천이 덮힌 침대 같은 곳에 누웠다. 천이 걸리적거릴 것 같아 천을 홱 하고 겉어내는 순간, 빨간 가위와 칼 들이 챙, 챙하고 서로 부딫히는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떨어졌다.

떨어진 칼과 가위들은 뭔가 이상했다. 디자인 자체가 빨갛다기보다는, 무슨 피같은 빨간 액체에 물들여져 빨갛게 된 것 같았다. 나는 순간 확 소름이 끼쳐 잠이 싹 달아났다. 무섭지만 호기심이 생긴 나는 혹시 다른 것도 있나 방을 다시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뭐, 처음 본 것 같이 별 볼 것은 없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다른 무언가를 찾고자 구석구석을 꼼꼼히 살펴 본 결과, 나는 방 한구석에 있던 MP3 하나를 발견했다. MP3를 켜보니 어떤 MP3 파일이 재생되고 있었다. 나는 재생버튼을 꾹 눌렀다.

 

“모든 게 궁금해 how's your day oh tell me (oh yeah yeah, ah yeh ah yeh)
뭐가 널 행복하게 하는지 Oh text me … “

 

MP3에서는 방탄소년단의 작은 것들을 위한 시가 흘러나왔다. 나는 이런 신나는 노래를 들을 기분이 아니었기 때문에 중간에 노래를 듣다 말고 ‘다음 곡’라고 적힌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이번에는 노래대신 어떤 녹음파일 같은 오디오 파일이 재생되었다. 오디오 파일에선 처음에는 걷는 소리를 제외하고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지만, 이내 와! 하고 감탄하는 소리가 들렸다. 별 볼것이 없다고 생각한 나는 ‘다음 곡’버튼을 누르려고 했지만, 갑자기 오디오 파일에서 악! 하는 비명소리와 액체를 옮겨 담는 동안 쪼르륵…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계속 오디오 파일을 들었지만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이내 오디오 파일 재생이 끝났다.

 

3부 : 배고픔과 탈출?!

… 의문의 오디오 파일의 재생이 끝난 뒤, 나는 혹시 다른 파일도 있을까 싶어 ‘다음 곡’ 버튼을 다시 눌렀다. 그러나 MP3에는 “더 이상의 오디오 파일이 없습니다.” 라는 메시지와 함께 다음 오디오 파일이 나오지 않았다. 음악 기능을 닫고, MP3 처음 화면에 돌아가 음악과 녹음기능 말고 기능이 더 없나 찾아보았지만, 설정 빼고는 더 기능을 찾을 수 없었다. 나는 할 짓이 없어 녹음버튼을 눌러 녹음을 시작했다.

 

“… 심심해”

“근데 내가 왜 이런 곳에 갇혀 있는 것일까.”

“왜 이 방은 문도 없지?”

“여기 너무 무서워…”

내 녹음을 들을 사람은 없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이렇게 혼자서라도 녹음을 하며 떠들떠들 해댔더니 덜 심심했다.  

그런데 떠들떠들하니 심심하지는 않았지만, 배가 몹시 고팠다. 나는 먹을 거리가 없나 하고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역시 없었다. 사실, 냉장고에 피 주스가 있긴 했지만 마시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2시간정도 지나니 배가 너무 고프고 목이 말랐다. 나는 평소 싫어해서 남긴 음식들이 너무 아까웠다. 버섯조림과 가지무침도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버섯조림도 가지무침도 없었다. 내게 주어진 먹을 거리는 오직 피 주스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피 주스라도 먹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 냉장고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갔다.

냉장고를 열자 다시 비밀번호를 입력하라는 메시지가 떴다. 나는 ★마음의 상처★를 뒤로 하고 담담하게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니_얼굴_조예준

그런데 화면에는 ‘비밀번호가 일치하지 않습니다. 다시 입력해 주십시오’라는 메시지가 떴다.   분명히 나는 니_얼굴_조예준 이라는 비밀번호를 정확히 입력했는데도 말이다. 다시 몇번이고  니_얼굴_조예준 이라고 입력해 보았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나는 다시 냉장고와 씨름을 벌이게 되었다. 전에 넣어본 사장님_나이스_샷 같은 단어와 방탄소년단_김석진 같은 단어도 넣어보았지만 계속 비밀번호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메시지가 떴다.

…거의 2시간이 지났을 때에도 나는 여전히 비밀번호를 풀지 못했다. 거의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지만, 풀면 피 주스라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힘을 쥐어짜며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냉장고는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고 계속 비밀번호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만 반복했다. 내가 아는 단어들을 거의 다 입력하고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나는 조예준_잘생겼다 라는 단어를 입력했다. 그러나 여전히 냉장고는 풀리지 않았다.

나는 힘이 빠진 채로 털썩 주저 앉았다. 내가 양심에 찔려 못 쓴 단어라 아껴뒀는데 비밀번호가 아니라니. 이게 비밀번호가 아니라면 도대체 뭐가 비밀번호인거지?

그 때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혹시, 영화에서 본 것처럼 책장을 열면 다른 공간이 펼쳐져 나갈 수 있을까? 라는 생각 말이다. 나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냉장고를 없던 힘도 쥐어짜내어 밀어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냉장고가 서서히 밀려나가고 햇살이 찬란한 바깥세상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너무 좋아 폴짝폴짝 뛰기까지 했다. 힘을 내 조금 더 미니 내가 나갈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이 생겼다. 나는 어서 뛰어나갔다.

그 때, 나는 냉장고의 전선에 걸려 넘어졌다. 내가 아픈 무릎을 붙잡고 아파하고 있을 때, 갑자기 어떤 그림자가 나를 덮쳤다.

쿵! 하는 소리 뒤 악!하는 비명이 방 안에 가득 울려 퍼졌다. 이내 방바닥이 빨갛게 물들었다. 아주 새빨갛게 말이다. 이내 피를 통에 담는 쪼르륵… 하는 소리가 방 안을 메울 뿐 이었다.